스파이더맨처럼 벽에 매달려…'보고도 못 믿을' 바티망 서울 왔다

입력 2022-07-28 08:53   수정 2022-07-28 15:03


파리의 집 한채가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바닥까지 통째로 뽑힌 집이 하늘로 날아가는데 그 아래엔 무성한 나무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물이 가득 찬 수영장 안엔 사람들이 머리 끝까지 갇힌 채 하늘을 올려다 본다. 건물 외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들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찰싹 붙어있다.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현대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들이다. 우리 눈에 그대로 보이는 장면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에를리치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작품 '바티망(Batiment)'이 서울 노들섬을 찾았다.
45도 기울인 거울의 비밀 "보이는 것을 믿는가"
프랑스어로 '건물'이란 뜻의 바티망은 2004년 파리예술축제 '뉘 블랑쉬'에서 처음 제작돼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20여 곳의 세계 대도시를 18년 간 여행했다. 각 도시마다 특징들을 담은 새로운 세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비밀은 45도 기울인 거울에 있다. 땅 위에 수평으로 놓인 모형 세트 위에 올라 포즈를 취하면 반사된 모습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사람들은 이 위에서 눕거나 쭈그려 앉거나 엎드린 채 '거울놀이'를 즐긴다. 해외 전시에선 하루 평균 4500명이 찾았다.


에를리치의 작품엔 대부분 트롱프뢰유(trompe-l'oeil·평면을 3차원 공간으로 보이게 해 착시를 유도하는 눈속임 미술)기법이 쓰인다. 일상의 공간을 지각하는 관점에 의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바티망 외에도 수영장, 교실, 탈의실 등 익숙한 공간들을 작품 속에 끌어들인다.

수영장(1999)은 야외 수영장처럼 보이지만 물이 들어있지 않은 수조다. 지하로 내려가 마치 사람들이 물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이고 수조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물 밖으로 보이는 다른 관람객들을 바라본다. 허상과 실제의 경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바티망이 국내 관람객에게 알려진 건 2017년 전 일본 모리미술관 전시 때다. 2004년부터 일본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에 상설전시된 그의 작품 '수영장' 작품과 연계해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모리미술관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수영장 할인'이 흥행했다. 당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며 일본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꼭 봐야 할 전시로 이름을 알렸다.
녹아내리는 건물, 뿌리채 뽑힌 집의 의미
그의 작품은 대부분 중력을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장면들 안엔 때로 비판적인 공간들이 연출된다. 녹아내리는 건물은 기후위기로 인한 온난화를, 우리의 터전인 집이 뽑히는 건 뿌리채 뽑히는 과도한 벌목의 현실을, 모래로 만든 66대의 자동차는 사막화되고 있는 지구의 문제를 지적한다.


작가는 말한다. “착시 기술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을 새롭게 인지하는 데 가장 적절한 도구”라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잔혹한 독재 정권을 바라보며 정치적 현실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 지 인지했다. ‘시각’과 ‘지각’이라는 사실적 경험이 사회로부터 주입된 교육과 합쳐져 추상적 개념이 뇌리에 박히고, 결론에 도달한다고도 했다.

집을 공중에 띄우고, 뿌리가 박힌 집을 크레인으로 하늘에 들어올리는 작업인 ‘뿌리째 뽑힌(2015’은 그런 점에서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공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파리 기후변화협약회의와 함께 기획됐다. 에를리치는 “시각이 강요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사물을 새롭게 보는 것이 쉽지 않다"며 "일상에서 보는 모든 것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 쉽게 다가가 반전의 경험을 일으키고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번 서울 전시는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서 12월 28일까지 열린다. 바티망과 교실(2017), 잃어버린 정원(2009)등은 설치 작품으로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세계의 지하철(2011)’과 ‘비행기(2011)’, ‘야간비행(2015)’은 영상 작품으로 설치됐고, 에를리치의 다른 주요 작품들은 사진으로 전시됐다. 바티망이 층고가 낮은 실내 공간에 설치됐다는 점과 자연 조명이 아닌 인공 조명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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